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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라엘의 스피치

 

 

 

 

 

 

 

 

 

《 메시아 라엘의 스피치 》

다음은 메시아 라엘께서 스피치한 것을 엮은
『각성으로의 여행』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사랑은 의식의 열매

사랑은 지구에서 가장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두뇌가 올바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발산하지 않는 두뇌는 고장 난 두뇌입니다. 미움과 폭력을 만들어내는 두뇌는 호르몬 대사와 전기화학적 작용에 이상이 있는 두뇌입니다. 더 이상 사랑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두뇌는 의식이 점차 약해지고 심지어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의식 또한 두뇌의 물리화학적인 작용입니다.

폭력과 미움과 살인 등은 우리 두뇌의 분비선 기능에 물리화학적인 혼란이 생겨 호르몬의 균형이 깨어짐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호르몬 분비선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의식과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상상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행동을 통해 두뇌를 훈련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가 사랑을 주게 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우리 두뇌가 더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뇌를 훈련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 내부의 모든 것들과 우리 외부의 모든 것들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대중이 하는 대로 따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기준과 반대되는 관점을 생각해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되는 관점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어떤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할 때 그것의 좋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둘 때 여러분의 두뇌는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첫눈에 알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명품, 훌륭한 음악, 기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두뇌를 강화하고 여러분의 지성을 강화하세요. 그렇게 하면 두뇌의 사랑을 관장하는 영역이 비옥해지고 사랑이 성장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을 경우, 진정한 사랑이란 이럴 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왜?” 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의식을 강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의식을 강화시킴으로써 여러분은 사랑을 발달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미움은 약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과 동정심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은 언제나 해답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흉악한 범죄자나 가장 나쁜 일에 있어서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점은 항상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음양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이지요. 검은 물방울 속에 작은 흰 원이 있으며, 흰 물방울 속에도 작은 검은 원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검은 것에도 항상 어떤 좋은 점이 있고, 가장 흰 것에도 항상 어떤 나쁜 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검은 것이 악이고 흰 것이 선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우리는 항상 틀리는 것입니다.



관조


“우리는 무한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도 있고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귀로 음악을 듣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관조상태에서 의식을 사용하여 음악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음악입니다. 그러면 소리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을 통해 우리를 뚫고 들어옵니다.

음악의 진동은 우리 몸속을 흐르며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고품격의 음악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이 침묵보다 더 아름다울 때만 말을 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이 고요보다 더 아름다울 때만 음악을 들어라.”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어보세요.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그냥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느껴보세요. 이 소리가 우리를 뚫고 들어가게 놔두고, 우리 두뇌의 물질들이 이 소리에 따라 조직되도록 놔둡시다. 그럼 이 소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조해봅시다. 소리는 우리 내부에서 물질이 되어 두뇌 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만듭니다. 형상이나 감촉 또는 냄새가 우리 두뇌 속에 새겨지듯 이런 소리도 우리 두뇌 속에 새겨집니다.

이 소리가 우리의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해봅시다. 각각의 소리는 우리에게 나름대로의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귀머거리처럼 전혀 듣지 않고서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형상만을 지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음악의 감동에 매료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약간 더 좋군요. 그리고 우리는 한 곡의 음악에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소리가 우리 두뇌에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우리가 듣고 있는 소리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리를 듣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각각의 소리가 우리 내부에 미치고 있는 특별한 영향을 느껴보세요.

이런 소리들을 들으며 관조의 상태에 들어가면 그 영향은 우리를 각성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강의보다도 훨씬 더 강력할 것입니다. 이 소리들이 우리내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느껴보세요.

각각의 소리와 그에 대응하는 정적은 우리 두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합니다. 처음에는 지각한다기보다 음악의 소리만 들리지만, 이 소리와 그것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완전히 집중하면서 관조에 들어가면 각각의 소리가 독특한 감각과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눈을 감으면 뇌가 시각적인 자극에 흐트러지지 않고 소리의 영향에만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소리의 영향이 훨씬 더 강력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 동안씩 눈을 가리면 청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느끼세요! 여러분이 두뇌에 미치는 소리의 영향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각각의 소리가 두뇌의 특정한 부위를 밝혀준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하면 각각의 소리와 정적, 작은 속삭임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소리들이 마치 작은 태풍처럼 여러분의 귀를 통해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게 하세요. 그리고 그 소리들이 여러분 두뇌의 세포 물질들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의식하세요. 모든 생각과 분석, 판단은 사라져야 합니다. 매순간 각각의 소리를 느껴보세요. 소리는 모두 새롭습니다. 같은 음이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그 음은 매순간 다른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두뇌는 각 음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에 같은 음을 들어도 매번 다르게 인식합니다.

느끼세요! 관조의 상태에 든다는 것은 소리가 우리를 고양시키고 소리의 색깔이 우리를 밝게 빛나게 하며, 우리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정적이 우리를 관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침묵이 해체되어 버린 것 같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은 종종 가장 아름답고 값진 가르침입니다. 디스코클럽의 귀를 찢는 듯한 음향과 일부 현대 리듬들은 우리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으며 과도한 타악기 소리는 병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불협화음은 고문에도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심지어 이런 소리들은 벼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뇌는 스스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청각신경계에서 전달된 전기자극을 인식합니다. 여러분의 두뇌 속에서 이 전기화학적 신호들을 인식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음악가가 들려주는 소리들은 마치 외과용 메스처럼 우리 두뇌를 파고듭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을 치료할 수도 있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또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거나 잠재력을 일깨워 줄 수도 있습니다.

참된 관조는 청각이나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시에 또는 따로 이용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관조하는 법을 익히세요. 주변의 형상들과 자연을 관조하세요. 자신 주위의 모든 것과 조화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관조는 올바른 관찰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관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감정이나 다른 잡념들을 없애야 합니다.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관조가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관조만이 의식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관조란 욕망을 배제한 채 사물 또는 존재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욕망 없이, 그리고 소유함도 없이, 그러나 동시에 그로부터 분리되지도 않으면서 사물로부터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바라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보지 마세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의 상태, 즉 존재의 기쁨을 느끼는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관조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에 대해 관조합니다. 새를 관조하는 것은 쉽지만 스스로 관조하고 있는 자신을 관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존재”를 관조하세요. 자신의 의식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조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의식입니다.

 



무한과의 조화

 




과학

“ 과학은 인류에 봉사하고
인류를 자유롭게 만드는 데 사용 되어야지
인류를 파괴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학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새로운 과학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과학시대에는 모든 연구가 용인될 것이며 기술혁명에 의해 기존의 모든 가치관들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장차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면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복제에 관한 논란은 너무나 하찮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제는 인류가 이루어야할 특별한 목표입니다. 복제는 인간의 가장 치명적 질병인 죽음을 정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성서나 기타 고대 문헌에는 인간이 신과 동등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복제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특권이란 바로 “불사”이기 때문이지요.

우주탐사는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진정한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희미하게 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인간은 속도의 제한이 걸림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곧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미 광속보다 빠른 어떤 입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광속 극복의 때가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지구의 과학은 아직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지는 겨우 1세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도 일 년만 지나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곤 합니다. 이런 모든 발견들은 컴퓨터 덕분입니다. 컴퓨터의 성능은 해마다 2배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진보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머지않아 우리는 단 1분 동안에 과거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발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다음 세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략 20년 내에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현재 전통의 껍질에 틀어박힌 채 우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노인들로서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들이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낡은 시스템은 붕괴될 것입니다.

나노 기술의 예를 들어보지요. 나노 로봇의 크기는 너무나 작아 한 방울의 물 속에 100억 개의 나노 로봇들을 채워 넣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로봇은 물질을 원자 단위에서 재조립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말이 실감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럼 우리 일상생활에서의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합니다. 여러분 집의 부엌에 전자레인지처럼 보이는 작은 오븐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 달린 마이크에 대고 "상추 샐러드를 먹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오븐이 우리 주위 모든 곳에 존재하는 원소들로부터 상추 잎을 구성해 냅니다. 이렇게 땅에다 야채를 재배하지도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비료를 사용하지도 않고, 그리고 슈퍼마켓까지 생산품을 운송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간단하게 샐러드가 제조되는 것이지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이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생각해봅시다. 간단합니다. 그저 오븐에다 대고 “비프스테이크!” 라고 말하면 그 기계가 자동적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비프스테이크를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상추든 비프스테이크든 모든 물질은 마찬가지 기본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도살할 필요가 없으므로 동물들에게 고통 줄 일도 없습니다.

이처럼 신기술은 우리 인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기술로 인해 생산성이라든지 사회학이라든지 세계경제라든지 하는 개념은 붕괴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노 기술에 의해 사라지는 노동

나는 27년 전부터 화폐와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인간은 노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27년 동안 내가 이렇게 말해왔지만 사람들은 비웃었지요. 복제에 대해 내가 예언했을 때 비웃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과학은 발전하고 있으며, 나노 기술은 어느 누구에게도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든 물질들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컴퓨터들을 서로 연결시키면 모든 인간의 지능을 서로 연결시킨 것보다 더 똑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연장선에 불과하지요. 오늘날 모든 반복적인 작업들을 대신 해주는 로봇과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사무실과 연구실에서 일할 사람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론 재미로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항상 할 수는 있지만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땅에서 금속과 석유를 캐기 위해 더 이상 광부가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땅 속에 수십억 개의 미세한 로봇들을 집어넣으면 그 로봇들이 우리를 위해 원자재들을 채취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로봇들이 이것을 공장으로 운반하고, 그곳에서는 또 다른 나노 로봇들이 이를 정제하고 가공할 것입니다. 농업, 목축 기타 모든 산업들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120살까지 산다면 현재 60세 내지 65세부터 시작되는 퇴직제도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원하는 사람만 일하고 또 재미있는 일만 한다면 일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무료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을 판매하는 일은 불가능해 집니다. 상업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완전히 다른 경제 시스템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비웃습니다. 웃을 수 있을 때 얼마든지 비웃으라지요. 그러나 이 같은 시대는 곧 다가옵니다!

 

 


비폭력


“존중심 없이 옳은 것보다
겸손하게 그른 것이 더 낫습니다.”

 


당나귀의 우월성

오늘날 우리 사회는 “존재”보다 “소유”를 더 중시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근육의 발달을 외모의 일부로서 높이 평가하고 정신의 발달은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놀라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폭력은 보통 육체적 행동, 즉 근육의 힘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에 젊은이들 특히 에너지가 남아돌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젊은 남성들이 그 피해를 입기 쉽습니다.

이 같은 정신적 혼란과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올바른 기준을 제시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근육이란 항상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우직한 황소가 세계 보디빌딩 챔피언의 근육보다 훨씬 더 강한 근육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섬유질 덩어리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보디빌딩 센터에서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갖춘 정신과 지성을 단련할 수 있는 마인드빌딩 센터를 만드는 편이 더 낫습니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힘을 사용한 결과로 발생한 것입니다. 육체를 사용한 힘이든 무기를 사용한 힘이든, 모든 힘은 두뇌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지성과 대화를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류는 원시적 과거의 배설물로 뒤덮인 바다에서 이제 겨우 목을 내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만적인 힘은 전쟁과 잔인한 정복이 난무하던 암울한 과거시대에 배설되었던 인류의 가장 더러운 찌꺼기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메스꺼운 원시의 바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우선 학교에서부터 비폭력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어리석은 것들 중에서 더욱 심한 것이 바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폭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실제로 이런 폭력행위는 대학교의 신입생 환영회에서 빈발하고 있는데,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조차도 힘센 학생들이 약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저 신입생들의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구실 하에 그런 행위들을 묵인하고 눈감아 버립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최우선적으로 방지해야만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에게 주먹질을 하면 지체 없이 그를 고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어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법은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을 힘으로 괴롭히는 학생은 힘으로써는 원하는 것을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배울 수 있도록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런 학생은 비행과 범죄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대도시의 중심가를 오염시키고 있는 폭력의 근본 원인은 다른 학생들을 힘으로 괴롭히는 폭력학생들과 그들이 저지르는 야만적 행위들에 너무 관대하고 느슨한 교육제도에 있습니다.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위협을 가하는 것은 원하는 바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보디빌딩 센터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도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코뿔소나 고릴라처럼 힘을 상징하는 동물들도 보디빌딩을 하지 않습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역기를 드는 고릴라를 상상해보세요! 동물들은 자신의 두뇌 수준에 맞는 근육을 타고 납니다. 말하자면, 가장 낮은 계층에서는 야만적인 힘이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인간의 세계에서는 법이 지배하기 때문에 완력이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세계 권투 챔피언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이 어떻게 처벌 받았는지 예로 들어봅시다. 한 가냘픈 젊은 여성이 그를 5년 동안 감옥에 보냈습니다.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고 그를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멋진 예입니까?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세계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연약한 젊은 여성에 의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를 세계의 모든 보디빌딩 센터들과 학교들에 게시해야 합니다. 법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진정한 힘은 근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것, 즉 정신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근육을 발달시키면 정신도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육의 발달에 집중할 경우 두뇌의 발달에는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두 가지에 같이 집중하려 한다면 모든 시간을 두뇌의 발달에만 집중하는 사람에 비해 두뇌는 반밖에 발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더 심각한 일은, 보디빌딩으로 근육을 발달시킨 사람들의 두뇌 속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이 연마한 그 힘을 사용하려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이 셉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근육의 섬유소를 단련하려고 일주일에 몇 시간씩 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육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피는 두뇌와 이두박근에 동시에 몰릴 수 없습니다. 한 쪽에 피가 많이 몰리면 다른 쪽에 흐르는 양은 줄어듭니다.

소크라테스나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은 어느 누구도 보디빌딩을 하지 않았으며 운동선수들처럼 이두박근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남녀평등이 인정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근육을 만들기 위해 보디빌딩을 하는 것은 여성들을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보디빌딩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소위 “약한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보디빌딩으로 가장 강한 근육을 발달시킨 사람보다 당나귀가 훨씬 더 강력한 근육을 갖고 있지요. 그렇다면 당나귀가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말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근육을 과시하는 사람을 보면 나처럼 해보세요. 즉 당나귀를 생각하는 겁니다!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전을 추구할수록 더 위험하게 되고,
위험을 추구할수록 더 안전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 부족한 정신성

오늘날 “존재”보다 “소유”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죄의식을 심어주는 신앙과 원시적 신화들에 기초한 신비화된 정신성이 퇴화한 것은 기쁜 일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과거의 정신성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지 않고 그 자리를 사막처럼 그대로 비워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빈자리의 주위는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자극받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물건을 삽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행복을 느끼지만 그 물건에 익숙해지고 나면 쾌감도 사라집니다.

결국 그들의 행복감은 고갈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제 그 물건은 더 이상 그들에게 행복한 환상을 심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질 기대를 안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맵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정신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라든지 이런 커다란 신비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은 은행에 아무리 많은 돈이 저축되어 있어도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것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깊은 절망감은 보통 젊은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 유리한데, 그것은 그들의 두뇌가 젊은이들보다 잘 기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아니면 그들은 젊은이들보다 더 참을성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나이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자신의 삶을 서서히 마지막으로 끌고 가는 시간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회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훨씬 빨리 지나갑니다. 그들은 삶을 즐기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행복은 창조하고, 키우고,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우리는 “존재”의 합당한 자리를 되돌려 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안락한 삶을 위해 “소유”할 필요는 있지만 먼저 “존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의 자살자 수가 교통사고나 암, 에이즈를 크게 앞질러 제1의 사망 원인이 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도에 전 세계에서 약 백만 명이 자살했으며,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수는 이보다 10배 내지 20배 더 많다고 합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평균 40초마다 한 명꼴로 자살하고 3초마다 한 명꼴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말입니다.

매년 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다가 죽기로 결심합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소유”는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공허입니다.

바로 이 때야말로 우리가 순수한 정신성으로 눈을 돌려야 할 순간입니다. 이 작은 느낌은 우리에게 “살아 있음”의 특권을 인식하게 만들어주고, 우리가 무의식의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것들은 의식하는 무한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불현듯 우리는 자신의 무한성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의식하는 인간의 특권입니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리는 삶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함을 느낄 때 자살하기로 결심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에게는 전혀 선택권이 없었지만 죽을 때는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매우 불편한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고 몸은 추웠으며 전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의료보험도 없었고 다른 아무런 보장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했습니다. 마치 짐승의 세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끔찍했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재발견하여 젊은이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가 눈뜨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리는 지금 행성간 문명, 은하간 문명을 건설하는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만약 내가 지금 15세 또는 16세의 소년이라면 장차 다른 행성을 방문하여 다른 문명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척 흥분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환상적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대의 막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새로운 정신성이 자라나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갖고 젊은이들을 고무시켜 주세요. 정신성은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위대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종교적 동물입니다.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낡은 원시적인 종교가 아니라 인간적인 새로운 종교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원어는 라틴어의 “religere”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자연과의 연결이라든지, 내가 다른 것과 연결된 느낌을 말합니다.

오늘날 이런 종교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생태주의운동이나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들이 혼합된 단체, 또는 나무나 식물, 동물, 지구, 태양과 달의 주기 등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미국 원주민들을 결합한 단체들이 그런 종류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정신성입니다. 이것은 유물론적인 정신성인데, 바로 오늘날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악마나 신을 앞세우는 비현실적인 정신성은 더 이상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젊은이들은 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옳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신”임을 이해하는 그런 정신성을 원합니다. 즉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이며, 우리 자신이 무한임을 깨닫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모든 것, 수많은 별들, 다른 행성들, 그리고 무한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느껴보세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의식하는 무한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별들과 행성들과 동물들과 나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이것을 느껴보세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우리 몸속의 세포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 주변에 살아 있는 생명체들, 나무들, 바다, 달, 우주, 이 모든 것들과 연결된 느낌으로부터 나오는 정신성을 체험해 보세요. 그러면 절대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성과 믿음을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면 자살률은 일분에 몇 명꼴로 더 늘어날 것이며 사망자의 명단은 더욱 더 길어질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교회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부와 악마, 다른 모든 헛소리들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모험

이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모험은 정신적 모험입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 정글이라든지 세상의 끝을 발견하러 나서는 탐험을 꿈꾸었지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열광적으로 탐험에 나섰습니다.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 맨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의 조상들, 초기 퀘벡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굉장한 희망을 안고 여기로 왔습니다. 이곳은 그들에게 놀라운 땅이었지요. 생전 처음 보는 동물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지만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희망이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했습니다.

이제 이런 시절은 모두 끝났습니다. 모든 땅들이 탐험되었지요. 다른 행성에 가서 탐험하고 싶기는 하지만 우리의 과학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모험이 남아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핸들을 잡고 시속 200km의 빠른 스피드로 달리면서 속도감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요. 자동속도감시 레이더가 도처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한속도는 시속 100km로 되어 있어 200 내지 300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한 신형 자동차들도 40년 전에 만든 구형 자동차들보다 조금도 더 빠른 것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정말 이상스러운 광경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남아 있는 모험은 없습니다. 모든 스포츠도 통제받고 있으며, 운동선수들은 다치지 않도록 신체 각 부위별로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아무도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모험이 하나 남아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신적인 모험입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신적 사파리 모험을 주선하는 정신탐험여행사를 창설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는 사이언톨로지(정신요법 치료를 추구하는 신흥종교) 신도, 또 하루는 불교도, 그 다음날은 유태교도, 또 다음날은 이슬람교도, 또 다음날은 라엘리안이 되는 거지요.

변하세요. 주위를 둘러보고 찾아보세요. 한번 시도해보세요. 현존하는 종교들을 섭렵하는 여행은 흥미진진합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여러분에게 꼭 맞는 종교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여기저기 모든 곳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들과 어깨를 부비면서 여러분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보세요.

 

 




인류의 창조자 우주인 ‘엘로힘’의 메시지를 전하는 국제 라엘리안 무브먼트(IRM)는 ‘국제 어린이 권리의 날’인 11월 20일을 기해 제2회 ‘국제 어린이 성교육의 날’ 캠페인을 전개한다.

IRM은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인구기금(UNFPA) 등 국제기구의 전문가들이 작성한 연구보고서들에서 권고된 대로 어린이의 자위행위에 관한 정보를 포함한 조기 성교육을 실행하도록 세계 각국 정부에 촉구할 예정이다.

“이러한 보고서들에 정의되어 있는 종합 성교육(CSE)은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예언자 라엘이 40여년 동안 가르쳐온 것으로, 그것은 그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창조한 외계문명인들인 ‘엘로힘(Elohim)’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다”고 ‘어린이 성교육의 날’ 대변인이자 라엘리안 가이드인 Clemence Linard는 설명한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각 연령대와 문화에 적합한 성교육을 제공해 주고 또한 WHO 보고서에 정의된 대로 성적 건강과 관련해 쾌감, 성취 및 웰빙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성에 대한 두려움과 죄악감 제거 및 성폭행 예방은 라엘 가르침의 일부이며, 라엘리안 철학에 따르면 조기 성교육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성폭력과 성학대의 감소, 원하지 않는 임신, 낙태 및 성병 확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Linard 대변인은 역설한다.

“WHO 보고서는 성과 쾌감에 대해 죄악감과 두려움을 주입하는 것은 기독교의 큰 특징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반면, 조기 성교육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에 대해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이는 그 무엇보다도 성학대를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Linard는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무신론이 우세하고 또 성교육 교과과정의 모범으로 꼽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성폭력 범죄율이 낮게 나타난다.”

Linard 대변인은 또한, 2009년 유네스코가 기독교 로비스트들의 압력에 굴복해 보고서 중 일부, 특히 5세부터 자위행위에 관해 가르쳐야 한다는 부분을 삭제했음을 강조했다. “퇴행적 종교의 압력에 의해 과학보고서 내용이 삭제된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다.”

지난해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어린이 성교육에 관한 2009년 유네스코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이 권고한 어린이 조기 성교육의 시행을 촉구하기 위해 최초의 ‘국제 어린이 성교육의 날’을 선포하고 성교육 캠페인을 개시했는데, 이는 그와 같은 보고서 검열을 비난하며 유네스코 성교육 보고서를 전문가들의 연구보고서에 따라 재편집할 것을 요구함과 함께 이러한 기본 성교육 지침들의 이행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조기 성교육의 이점들을 설명함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한편, 2012년 유네스코가 펴낸 ‘아태지역의 성교육 시행 및 확대를 위한 정책 및 전략 조사보고서’(A Review of Policies and Strategies to Implement and Scale Up Sexuality Education in Asia and the Pacific= http://unesdoc.unesco.org/images/0021/002150/215091e.pdf)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아동 성교육 전략과 실행 계획, 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하는 등 조사 대상 28개국 가운데 거의 최하위 수준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성교육 지지 서명 사이트
http://www.change.org/p/the-governments-of-all-countries-in-favour-of-sex-education-from-childhood

※참고자료
*UNESCO(2009). International Technical Guidance on Sexuality Education :
An evidence- informed approach for schools teachers and health educators.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8/001832/183281e.pdf

*UNESCO(2015). Emerging Evidence, Lessons and Practice in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a global review.
http://unesdoc.unesco.org/images/0024/002431/243106e.pdf

*UNFPA(2014). UNFPA Operational Guidance for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
A Focus on Human Rights and Gender.
www.unfpa.org/sites/default/files/pub-pdf/UNFPA_OperationalGuidance_WEB3.pdf

*UNFPA(2015). The Evaluation of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Programmes :
A Focus on the Gender and Empowerment Outcomes.
www.unfpa.org/sites/default/files/pub-pdf/UNFPAEvaluationWEB4.pdf

*World Health Organisation(2010). Standards for Sexuality Education in Europe.
www.oif.ac.at/fileadmin/OEIF/andere_Publikationen/WHO_BZgA_Standards.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