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을
밝힌다 》
이 단원은 인류의 창조자
엘로힘(ELOHIM)께서 "교회의 종말과 교회의 오류"에 대해서 지적한 내용을
수록한 『지적설계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지적설계:119쪽에서 124쪽 참조 = |
《
교회의 종말과 오류》
『 보는 자의 눈은 흐려지지
아니하고 듣는 자의 귀는 경청하리라. … 다시는 겉약은 바보를 고상한 사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간사한
자를 귀족이라 하지 아니하리라. 겉약은 바보는 함부로 입을 놀리고 나쁜 생각만을 마음속에 품는다. 그는
매사에 사기나 치고 야훼께 함부로 말하는 자이다. 굶주린 사람의 밥그릇을 쏟아 버리고 목마른 사람의
물 대접을 차 버리는 자이다… 간사한 자는 간악한 수단이나 짜내고 간계나 꾸며 대는 자이다. 곤궁한
자들이 바른 말을 할지라도 그 불쌍한 자들을 거짓말로 파멸시킨다.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며
고명한 편에 설 것이다. 』(이사야서 32:3~8)
여기서 “보는 자의 눈은 흐려지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의 의미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야훼에 대해 그릇되게 말해왔으며 진실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계획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히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죄나
파문 따위의 불합리한 명목으로 위협하여 교회에 충성을 하도록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사정을 탄원할 때 진실을 이해할 지성을 갖지 못한 자들은 교회가 시키는 대로 교회의 거짓을 두둔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고결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비록 그들이 인간을 괴롭히는 교회의 승인없이
살게 될지라도 고결한 행동을 취합니다.
중세 마녀사냥(좌)과
산채로 화형당한 신부이며 과학자인 지오다노 브루노(우)
『 너희는 모르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한 처음부터 너희 인간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냐? 땅의 터가 잡힐 때부터 잘 알고 있던 일이 아니냐?』 (이사야서 40:21)
『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 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 (이사야서 42:1)
『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 하시며…』(이사야서 42:3)
당신이 교회와 그 허위를 철저하게 부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소멸되어 갈 것입니다.
이 소멸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심지가 깜박’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이제 사라질 때입니다. 교회는 수많은 과오를 범했으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려 하진 않고 진실을 희생시킨 대가로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나 너무 책망해서는
안 되겠지요. 진실의 증언인 성경의 말씀이 교회 덕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니까요.
그러나 교회의 잘못은 큽니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진실에 덧붙였으며 원래의
성서에 있는 구절들을 틀리게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자들을 지칭하는 ‘엘로힘(Elohim)’ 이라는
용어를 단수어인 ‘하느님(God)’ 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어에서 ‘엘로힘 (Elohim)’이라는
단어는 ‘엘로하(Eloha)’ 의 복수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창조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유일신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지요.
또 다른 잘못은 예수를 추억하는데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숭배하게 만든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십자가 모양을 한 나무 조각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이글이글 타는 장작불에 빵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자. 남은 토막으로는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나무토막 앞에 엎드리자.” 하고 말하는, 생각도 없고 지각도 없고 철도 없는
것들. 』(이사야서 44:19)
《
교회의 오류 》
교회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게 만들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기도만 하도록 시키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마태오복음서 6:7)
또한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나친 부를 쌓았습니다.
『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땅에 재물을 쌓아 두지마라...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 편은
미워하고 다른 편은 사랑하거나, 한 편은 존중하고 다른 편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YAHWEH)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오복음서 6:19-24)
『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여행
보따리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마태오 복음서 10:9,10)
어리석은 율법과 육식을 금하는 금요일 등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복음서마저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 (마태오복음서
15:11)
단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감히 바티칸의 부와 사치 속에 파묻혀 있을 수가 있을까요?
복음서에는 ‘금이나 은’ 을 소유하지 말고 여벌의 옷도 가지지 말라고 씌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감히 선행에 대해 설교할 수 있을까요? |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마태오복음서 19:23)
『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 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복음서 23:4~11)
이렇게
복음서에는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도덕관과 생활양식이 다른 것에 지나지
않는데 교회가 어떻게 감히 이러한 차이를 죄로 규정하고 인간을 속박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데도 바티칸의 부에 젖어 있는 자들이 어떻게 감히 선행을 설교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겸손에 대해 설교하면서 어떻게 감히 세속의 초대와 명예를 추구할 수
있을까요? 복음서에는 분명히 금하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아버지(神父님),
예하(猊下: 추기경의 존칭), 또는 성하(聖下:교황의 존칭) 라고 부르게 할 수가 있을까요?
만일 내일이라도 교황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리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목적으로 길거리에 나서서
오늘날 증거가 될 진실을 외치는 가난한 순례자가 된다면 교회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지요.
교회의 사명은 끝났습니다. |
그러나 교회는 불행한
사람들을 돕거나 지금까지 왜곡되고 비밀에 부쳐져왔던 기록들의 참된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을 돕는 선행
쪽으로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하면 많은 성직자들의 고결한 정신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티칸은
그 자신의 재화를 팔아 후진국의 재정을 돕거나, 단지 ‘듣기 좋은 말만이 아닌’ 그곳에 직접 가서 몸소
실행함으로써 그들의 발전을 돕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결혼식이나 특히 장례식을
치르는데 있어 사람의 재산에 따른 여러가지 형식이 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또 다른 과오입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
= 이 장은 오직 창조자
엘로힘의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